최초의 전차
최초의 탱크 개발과 배경 - 제1차 세계대전
▶ 설명 :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하루 사상자가 10만 명에 이르는 참호전이 벌어지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전차는 랜드쉽과 워터탱크라는 암호명로 개발되었다. 최초의 탱크가 실제 전투에 투입된 것은 1916년 9월 15일, 플레우쿠슬레트 전투에서였다.
최초의 전차, 최초의 탱크 개발과 배경 - 제1차 세계대전
최초 전차의 역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82년에 그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차가 탄생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다.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전술이 등장하면서 하루에만 1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던 그 시절, 참호와 철조망, 기관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전차라는 무기체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전차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영국의 공병 장비였던 스윈튼 중령이었다. 그는 농지나 야지를 마음대로 다니는 트랙터의 무한궤도를 보고 이를 전차에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육군은 이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결국 해군 장관인 윈스턴 처칠이 이 아이디어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는 육상한 위원회를 만들어 전차 개발을 시작했다.
전차의 암호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랜드쉽이고, 다른 하나는 워터탱크였다. 이 두 가지 이름은 전차가 전선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숨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사실, 독일군과 프랑스군도 비밀리에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첫 번째 전차가 실제 전투에 투입된 것은 1916년 9월 15일, 플레우쿠슬레트 전투에서였다. 영국군은 이 전투에서 총 49대의 전차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독일군이 전차를 처음 봤을 때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전투 개시선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24대의 전차가 고장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전차는 몇 킬로미터에 걸친 돌파구를 만들었고, 독일군 포로가 1000명이 넘게 발생했다. 그러나 초기 전차는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온도는 50도까지 올라가고, 최고 속도는 6km에 불과했다. 진동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반 총알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었지만 철갑탄은 다 뚫려 버렸다.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전차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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