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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탱크,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한 제1차 세계대전의 솜전투 3 최초의 탱크,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한 제1차 세계대전의 솜전투 3 병사는 소모품으로 학살되고 신병기 탱크가 출현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은 최초로 탱크를 사용합니다. 참호를 파고 들어가서 대치하는 전쟁은 상호 간에 전진이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대치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은 길어지고 돌격 중에 전사하는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게 됩니다. 전진이 되지 않는 전투가 계속되자 솜전투에서 영국군은 전쟁 최초로 탱크를 투입했습니다. MK.1전차는 인류 최초로 전투에 참가한 탱크지만 고장과 느린 속도 때문에 오히려 야포의 표적이 되어 별로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소므전투에서 큰 공헌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최초의 탱크를 이용한 전쟁이라는 영향을 주며 이후부터는 독일도 탱크 제작에 뛰어들게 되었..
소므전투, 하루에 6만 명이 죽어간 1차 세계대전의 솜전투 2 소므전투, 하루에 6만 명이 죽어간 1차 세계대전의 솜전투 2 하루 사망자 최고를 기록한 어처구니 없고 무식한 전투 당시만 해도 근대적 전투 방식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3000문의 포로 8일간 대규모 포격을 한 뒤 기병대와 보병으로 돌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포격에도 불구하고 참호 속에 숨어있던 독일군과 방어철조망은 제거되지 않았고, 영국군은 19C형태의 전쟁전술을 써서 병사들이 무거운 군장을 맨체 느린 속도로 뛰어가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의 기관총에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영국군 병사들은 마치 학살을 당하듯 돌격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개죽음이 두려워 회피하는 병사들은 즉결재판을 거쳐 총살 당했습니다. 그래서 솜전투는 세계대전이 낳은 학살전투라고 합니다. 결국 양쪽의 엄청난 피해만 보고 ..
소므전투,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과 영국군의 솜전투 1 소므전투,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과 영국군의 솜전투 1 병사는 소모품일 뿐인가? 하루 당 1만 명씩 죽어간 전투 솜전투(또는 소므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북부에서 영국,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벌인 전투로 12km 전진을 위해서 4개월간 12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최초로 탱크가 투입된 전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투 첫날, 6만명이 사상 당한 전투였습니다. ⓒ mentalfloss.com 제1차 세계대전에서 솜전투 이전에 프랑스와 독일은 베르됭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베르됭에 집중된 독일의 공격을 분산시키려고 솜강 지역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영국이 지휘를 맡은 이 지역에서 영국의 전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3000문의 포로 8일간 대규모 포격을 한 뒤 기병대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