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홍국영
홍국영의 최후와 누이 여동생 원빈 홍 씨
▶ 설명 :
조선 시대 세도정치로 유명했던 홍국영에 대한 정리다. 정조 시대의 정치가인만큼 정조와의 관계도 함께 알아둬야 이해가 쉽다. 또한 홍국영의 누이(여동생) 원빈 홍 씨와의 사건까지 사건들을 이어간다. 다만, 홍국영의 최후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정확한 것을 알기 위해 여러 해석이 있는 중이다.
정조와 홍국영 / 누이 여동생 원빈 홍씨와 홍국영의 최후
홍국영은 누구인가
1748년 ~ 1781년 4월 28일(음력 4월 5일)에 살았던 양반이다.
조선 영조, 정조 시대의 정치가. 최초의 세도정치로 유명하다. 자는 덕로(德老). 본관은 풍산 홍 씨.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와는 10촌 사이다.
얼굴이 예쁘장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이며 시문을 잘 짓고 창을 부르기 좋아하였다 한다. 또한 '눈치가 빠르고 민첩했으며 얼굴 생김새가 준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 홍 씨가 말하길 "주상이 홍국영을 가까이하는 모양새가 꼭 사내가 계집을 가까이 하는 모양새 같다", "간사한 첩에 미혹된 것과 같았다"라고 홍국영에 대해서 '매우 잘 생기고 언변이 뛰어나서 미모로 내 아들을 홀렸다'라는 식으로 묘사하며 정조와 홍국영이 각별한 사이임을 언급했다.
세손 궁의 궁료(宮僚) 시절 때부터 정조(正祖)의 총애를 얻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홍국영의 누이 여동생 원빈 홍씨
1772년 정조와 처음 대면해 빠르게 친해진 홍국영은 "세손(정조)의 오른 날개"라는 표현이 사서에 등장할 정도로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훈련대장도 역임하면서 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왕족과 신하들의 원한을 많이 받았다.
정조1년(1777년) 홍상간, 홍계능 등이 모의하여 경희궁에 자객을 침투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홍국영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집안의 여인들까지도 홍국영의 저주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1778년 홍국영은 자신의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다. 그녀가 바로 누이 원빈 홍 씨인데, 지위는 유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홍국영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
홍국영의 최후와 몰락
1779년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당한다. 그 후 그에 대한 온갖 비난이 쏟아졌는데 이렇게 된 주된 원인은 홍국영이 권세를 믿고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처음 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의 기록에 의해 정조의 뜻이었다는 것이 확실시된다. 전반적 구조는 정조에게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몰락한 홍국영은 실의에 빠져 살다가 결국 유배지 강릉에서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홍국영의 사후에 그의 사람이었던 훈련대장 구선복 등의 역모가 적발되었고, 상계군 이담에게도 반역죄가 적용되면서 풍산 홍 씨는 그야말로 몰락의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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