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탄압받던 예술가
- 추상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
(사진: 1947년 작품인 "행복한 날". 히틀러에게 탄압을 받던 독일의 추상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의 작품이다. / ⓒ archiv-baumeister.com)
20C 초부터 불었던 원시미술 흐름에서
미로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빌리 바우마이스터의 그림은
기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형태를
포함한 특징을 나타내는 작품들입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탄압받던 예술가 - 추상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
2차대전 전후에 독일에 나치당이 집권하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으면서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퇴폐미술, 타락미술로 낙인 찍히어
공식적인 미술활동을 금지 당하게 됩니다.
(사진: 가장 히틀러에게 탄압을 받을 시기의 빌리 바우마이스터. 그의 그림은 선과 기하학적인 형태이 특색있으며 매력적인 색감을 가지고 있다. / ⓒ willi-baumeister.org)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파, 야수파는
모두 퇴폐에술로 간주되었으며
작품활동 금지 뿐만 아니라
전시 작품을 철거하거나 압수하고
억지로 망명을 보내는 등의
탄압을 받게 되었고,
빌리 바우마이스터도 탄압 받았습니다.
(사진: 나치 독일 히틀러에게 탄압을 받던 1941년 작품. 그 어려움 속에서도 빌리 바우마이스터의 회화는 점점 더 완숙미가 더해 가고 있다.)
히틀러는
미술을 사랑한 독재자이기도 했는데
힘과 인종적 우월성, 영웅적이고 시대적인 묘사를 하는
미술을 권장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에 반하는 모든 예술은
퇴폐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빌리 바우마이스터의 예술 역시
히틀러에게는 퇴폐미술일 뿐이었습니다.
(사진: 히틀러는 전쟁광이었지만, 비엔나국립미술아카데미에 시험을 칠 정도로 예술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점점 전제죽의적인 미술로 편향되었다.)
하지만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성격이 낙척전이었다고 합니다.
절망에 빠지기 보다는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진: 히틀러가 아꼈던 작가 아르노 브레커의 작품활동 모습. 그의 작품은 힘과 영웅을 다루었기에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목적에 맞았다. / ⓒ gazeta.pl)
[히틀러의 탄압... 소심한 반항]
히틀러가 아꼈던
아르노 브레커의 작품인 "복수자"를 찍은 사진 위에
우스꽝스런 낙서를 한 작품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빌리 바우마이스터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며
히틀러의 영웅주의 미술에 대한
대항이기도 했었습니다.
(사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그림.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 고통받던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점점 더 형태를 해체하여 추상화가로서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전쟁이 끝나자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탄압에서 벗어나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사진: 말년의 빌리 바우마이스터. 1955년에 찍은 사진으로 노년의 작품들과 함께 하고 있다. 독일 추상회화에서 추상화가로서의 비중도 매우 높았다.)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성격적으로
매우 폭넓은 사교성과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국제적으로 여러 인맥들이
세계에 소개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2021/07/16 - [지식 정보 공유/예술&문화] -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탄압받던 예술가 - 추상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
2021/07/31 - [지식 정보 공유/예술&문화] - 종합적 입체파미술 작품의 특징을 가진 화가 - 빌리 바우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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